“공부하고 싶어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겪어보지 못하고는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고려장학회도 이 때문에 설립됐고, 어려운 후학을 위해 장학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김천시 조마면이 고향인 최대원 고려장학회 회장. 최 회장은 어렵게 공부해 온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려운 후학들이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미약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최회장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형제들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급박한 실정에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어린나이에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향학열은 직장업무 중에 틈을 내어 강의록과 씨름한 결과 1년여의 각고 끝에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영남대 법정대학에 입학, 고난은 이어졌지만 야간에는 시간강사로 학원에 출강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이 때부터 최회장은 성공을 이룰 경우 후학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후 1978년 대우그룹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탄탄대로의 직장생활을 시작, 계장으로 승진해 재직할 당시 부하직원의 실수로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든 원인과 책임이 부하직원에게 있었으나 조직과 사회적 책임을 질수 있는 자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최회장은 소신에 따라 사표를 제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LG화학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 입사 12년만에 LG화학(주)의 선임부장까지 올랐다. 이는 관리자의 역할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되며 지금도 사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1993년 김천공단에 소재한 J사의 경영에 참여해 첨단 경영기법과 부지런함으로 일관하여 10배 이상 신장시켜 년매출이 30억원 이었던 회사를 연 3백억원의 년 매출액으로 신장시켰다.
이후 2000년까지 8년 동안 성장을 거듭하여 우량중소기업으로 발돋움 시켰다. 그 와중에도 1995년 구미공단에 소재한 K전자 계열인 T전자를 매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던 중 부채가 엄청나고 노조의 경영권 개입이 심해 인수업체가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기 위해 회사인수를 결심, 경영권을 이양받았다.
이후 태영전기(주)로 개명, 2년여만에 회사부채율이 거의 없는 튼튼한 회사로 만들었으며 복지증진과 후생사업으로 강성노조를 잠재우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경영의 귀재로 평가받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평생 식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최회장은 고려전자(주), 고려정보통신(주), 태백전자(주) 등 여러개의 회사 경영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회장은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만학도 이기도 하다. 영남대를 졸업한 후 영남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연세대 경제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전공, 국민대 정치대학원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해 취득한 석사가 3개나되고 프랑스 파리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학했으며 2004년 2월에는 대구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 대구대에 출강하고 있다.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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