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가 증언 자료를 모아 문화재 반출 증언록인 `잊을 수 없는 그 때'를 발간했다. 이에 본지는 박영석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회장으로부터 발간 배경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경북지역의 문화재 반출 증언록 `잊을 수 없는 그 때'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간하셨습니다. 그 배경부터 말씀해주십시오.
경북지역은 면적도 넓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여러 가지 귀중한 문화재들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문화재의 보고(寶庫)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문화재가 많은 만큼 안타까운 사정도 많은 지역이 바로 경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강점기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문화재가 도굴을 당한다든가 훼손, 반출되는 사례가 그만큼 많은 지역이란 얘깁니다.
아프고도 부끄러운 부분입니다만 그런 이야기나 증언들이 지역마다 많이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세월이 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꾸 사라져 가고 있다’ 라는데 착안을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문화재 훼손이나 반출에 관한 여러 가지 증언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겠다 해서 경상북도의 사업비 지원을 받아 시작했고, 비로소 이번에 책을 펴내게 됐습니다.
ⓒ 중부신문
◆ 증언 자료들은 어떻게 모았나요?
막상 증언을 모아서 책으로 내야겠다고 하니 증언 채집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의 일년 동안 제보를 받았습니다. 문화재 도굴이나 약탈을 목격하였거나 현장을 담은 사진이나 기록물 등을 소장하고 있는 분들은 제보를 해달라 이렇게 언론에 홍보도 하고 포스타도 붙이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본부 내에 증언채집 수록을 위한 조사단을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시군별로 향토사학가, 원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문화원 관계자들과의 면담과 인터뷰를 계속해 나가는 방식으로 증언들을 모았습니다.
◆ 증언록의 구성과 내용도 좀 소개해주시죠.
증언록의 제목을 <잊을 수 없는 그 때-不忘의 시간>으로 했습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훼손되고 반출되는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자, 후손으로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그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순간으로 돌아가서 문화재를 지키지 못한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그 당시 훼손되고 반출된 문화재를 반드시 되찾아 오자는 뜻에서 <잊을 수 없는 그 때>라고 했습니다.
모두 480페이지 분량인데요 내용은 도굴로 인한 경북지역의 고분 및 석조물 파괴 실태와 함께 경북지역 23개 시군의 주요문화재 훼손 및 반출에 관한 제보와 증언들을 실었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의 도굴로 인한 경북지역의 고분및 석조물 파괴의 대표적 사례와 또, 고령지역 문화재 도굴, 밀반출에 관한 실태와 함께 가야문화재 훼손반출에 관한 향토사학가 여섯 분들의 녹취록과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자 태실 실태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 특히, 성주 태실과 고령 문화재의 도굴과 훼손, 밀반출에 대한 증언이 생생하게 들어있다고 하는데, 이 내용도 좀 말씀해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성주군 월항면에는(인촌리 선석산 아래에 있는 태봉 정상부 소재) 세종대왕자 태실 19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국가지정 사적 444호로 지정이 돼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1977년 두 차례 정비를 했습니다. 그 당시 정비를 하면서 21점의 유물을 수습했고 현재, 개인이 8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태실 하나에 최소 4점씩의 유물이 기본이므로 76점 이상의 유물이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29점만 확인돼 많은 유물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도굴되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고령지역의 문화재 도굴은 더 심각합니다. 사실 그 규모나 정도를 알 수 없는 상탭니다. 고령 지산동고분군만 해도 고분이 700여기나 됩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7차례 이상 발굴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만 당시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엄청난 규모로 도굴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증언과 목격담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습니다.
◆ 증언록에 있는 담긴 문화재 훼손 또는 반출 사례 외에도 해외로 밀반출 된 우리 문화재, 엄청나게 많죠?
정부가 확인한 국외소재 우리문화재가 현재 15만 2910점입니다. 6만 6천여점이 일본에 있고 4만 여점이 미국에 있습니다. 두 나라에만 10만점이 넘습니다. 해마다 새로 확인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 파악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우리문화재가 외국에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문화재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 이상은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재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지역은 신라 천년이 자리한 곳이고 가야가 터를 잡은 곳입니다. 또한 유교와 불교가 꽃을 피운 지역입니다. 이런 것들이 배경이 돼 일제강점기 때를 보면 유명한 일본인 골동품수집가들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가장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국외반출 문화재들을 살펴보면 대구경북지역의 것들이 특히 많습니다. 우리문화재 찾기운동이 경북에서 더없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 다보탑 + 돌사자
ⓒ 중부신문
↑↑ 의성 관덕동 석탑 + 돌사자
ⓒ 중부신문
◆ 부당하게 반출된 우리 문화재, 반드시 되찾아야 할텐데.. 증언록이 문화재를 찾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이번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증언록을 발간했습니다만 우리지역에서 훼손되고 반출된 문화재를 생각하면 그것의 수천분의 1, 수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통해 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소중한 문화재가 언제 어디로 유출되고 반출되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것의 행적을 추적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1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고 그 깊이도 점점 더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근거와 정당성도 더 확실히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실제 문화재 반환으로 이어져야 할텐데, 관련해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문화재 환수는 크게 세가지 방식으로 주로 이뤄집니다. 첫째는 국가나 기관, 개인으로부터 반환이나 기증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30년, 50년 장기 대여라는 방식으로 사실상 자국으로 되돌려 가져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해 오는 것입니다.
세가지 방법 모두 간단치 않습니다. 많은 절차와 과정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는 민간단체로서 이러한 세가지 방면의 노력을 동시다발적으로 기울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적입니다. 참여와 관심입니다.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의 회원은 현재 2500명입니다만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 www.gbcs.go.kr로 들어오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기부도 할 수 있습니다. 환수기금은 지금까지 2억7천여 만원이 모금됐습니다. 많은 참여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습니다.
우리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부신문 기자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