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이원록과 백형 일하 원기, 동생 수산 원일·여천 원조·원홍은 안동군 도산면 원촌동 881번지에서 출생했는데. 퇴계 이황의 5대손 구를 입향조로 하는 원촌파이다. 이들 6형제는 퇴계 이황의 13대손인 아은 이가호와 범산 허형 딸 허길 사이에서 태어났다.
육사의 조부 치헌 이중직 (1847∼1916)은 장릉참봉으로 1903년 판임관이 되었고, 1904년 8월경 조직되는 충의사의 사원으로 참가하였다.
1909년 12월에는 예안의 도산서원에 설립된 보문의숙의 초대 숙장이 되었다. 이중직은 일찍부터 가학으로 다섯 손자들을 사숙하였고, 손자 원기와 원록을 보문의숙에 입학시켜 신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육사의 아버지 아은 이가호 (1878∼1941)는 1905년 양주군수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허길은 선산 임은 출신의 의병장 범산·성산 허겸 , 흑)·허위와 4촌간이었다. 허형·허훈 등은 모두 예안의 전성 이씨 집안으로 딸이나 손녀들을 시집보내 중첩혼을 맺고 있었다.
육사의 집안은 1916년 조부 치헌공이 별세하면서 가세는 기울어지기 시작하였고, 안동군 녹전면 신평동, 속칭 듬벌이로 이사하였다. 1920년 원기가 결혼하여 대구에 살림을 차리면서 원록·원일 등도 대구로 이사를 가서 한동한 석재 서병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이원기(1899,8. 29∼1942,7월 ,13)는 1911년 보문의숙이 폐교된 뒤 본적지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6년 정월 조부가 별세하고, 그해 6월 부인 안동 권씨가 죽었다. 그 후 이원기는 장희학의 딸 인동 장씨와 결혼하여, 1920년 아우들과 함께 대구에서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는 대구에서 부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거느리며 어려운 살림을 맡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동생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는 아우 원록 원일과 함께 1925년 9월 북경을 다녀온 성주의 독립운동가 이정기로부터 중구에서의 독립운동에 관한 설명을 듣고 비밀결사 암살단을 조직하고, 의열단 등 재만 독립운동잔체의 국내활동을 후원하였다. 1927년 10월 장진흥의 조선은행대구지점폭파의거)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아우 원록·원일·원조와 함께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 자료제공: 구미 왕산기념관(465-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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