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3^1 독립 만세운동 행사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구미시와 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사물놀이, 난타공연, 진혼제등 식전행사와 독립선언문 낭독, 인동기미년 독립만세운동 약사소개, 추모시 낭송, 3^1절 노래합창등 추모행사 순으로 열렸다.
86년 전 인동 진평동 기미년 3.12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여 숭고한 선열들의 독립정신과 애국심을 선양하기 위한 이번행사에서 박동진 인동 3^1 독립독립운동 재현행사 추진위원장(인물사진)은 “전국적으로 불타는 구국운동에 호응하여 86년 전 오늘, 이 지역에서도 많은 열사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펼쳤으니, 이것이 바로 경북중서부지방의 3^1 독립운동 시발이 되었다.”며 “유서 깊은 이 자리에서 최근 중국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이때에 일본의 망언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행사를 개최하게 됨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810년 일본의 무력침략으로 한일합병이 되자 늘 국권 회복을 염원하던 애국지사 이상백, 이범성, 이내성 등은 모두 기독교 신자로 당시 인동면 지평동에 살고 있었다. 1919년 3월1일 이후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전국적으로 높아가고 있을 때 3월7일 대구 개성학교 학생 이영식 등이 등사판으로 등사된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동지 이내성과 더불어 진평동의 유지인 이상백의 집을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이영식은 독립선언서를 보이면서 지금 전국 각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여기에 호응하여 운동을 전개해 달라고 종용했다. 이에 이상백, 이내성은 이 운동에 적극 찬동하여 즉석에서 이를 허락했다. 이후 이상백의 집에서 이영식, 이범성, 이내성 등을 거사를 논의하고 이어서 같은 동리의 이영래, 임점석, 임용섭, 박명언, 권영해 등과도 상의하여 모두들 찬성을 얻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약정하고 거사 준비를 서둘러 이상백, 임용섭은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3월11일에는 이상백의 집에서 이영식, 이영래, 임점석 등이 의거 당일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약정한 3월12일 박명언 등은 이날 동리의 각호를 돌아다니며 오후 8시 뒷산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날 또 필사해 둔 독립선언서를 동리 요소에 붙이도록 하여 동민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날 오후, 8시가 되자 동민들은 뒷산으로 속속 모여들어 수효는 무려 300여명에 이르렀다. 이때 이상백, 이영식은 교대로 군중 앞에 나타나 민족자결주의원칙에 따라 조국이 불원 상래에 독립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또 이를 앞당기기 위해 힘차게 시위 운동을 전개해야 된다는 사실을 역설한 후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중들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태극기의 물결과 만세의 함성은 군중들을 새로운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다가 달려온 일본군경에 의해 주동 인물 8명이 검거되고 군중들은 강제로 해산 당하였다.
서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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