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해 독일이 점령당했던 1807년, 최악의 불행한 상태에서 조금씩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고 하는 기운이 고조되어 가고 있음을 확신한 독일의 피히테는 1807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프러시아 학사원의 대강당에서 연속적으로 강연을 하여 독일인의 애국심을 환기시켰다고 한다.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추후 책으로 출간된 이 강연을 통해 ‘독일의 청년을 교육시킴으로써 독일을 구하고, 그것을 근본으로 하여 전 인류의 도덕적 개혁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이 처한 현실도 당시 19세기 초 독일 국민들이 처한 현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20세기 초와 너무나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3포니 4포 같은 듣도 보도 못했던 말들이 헬조선이라는 조어와 섞여 청년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20세기 초엽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19세기 초 독일 국민들과 다를 바 없이 오직 생존을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살아온 각각의 시대를 꼼꼼히 살펴보면, 지금이든 아니든 어떤 세대에서도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다. 20세기 초 정확히 말해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식민청년들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고통, 그리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오직 조국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젊은이들의 아픔들, 그리고 내 나라를 제대로 가졌지만, 4.19와 5.16을 겪으면서 느꼈던 젊은 세대, 그리고 10.26과 5.18을 겪으면서 자라야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망들 또한 IMF 사태를 맞아야 했던 그 젊은이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가장 아프게 느껴야 했던 세월들이었다. 그 중 어느 시대가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웠는지를 묻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고통은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세대의 고통, 그것이 가장 아픈 고통이었을 것이다. 1950년이라면 1950년의 고통이, 1960년이라면 1960년의 고통이, 그리고 1997년을 살아온 젊은 세대라면 1997년의 고통이 가장 아픈 것이다.
본 필자는 지금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져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청년들에게 한 움큼 내려놓고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관찰하고 세계에 대해 고민하라는 말을 하고자 한다.
지금 청년세대(2∼30대)들은 쉼 없이 너무나 힘껏 달려왔다. 태어나서 어느 순간부터 부모에 이끌려 어린이집과 유치원·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또한 그 사이에서 다녔던 수많은 학원들까지... 우리 부모나 기성세대들이 평생은 배워도 배우지 못할 만큼의 학습을 소위 기성세대의 ‘불과 3분의 1의 나이’에서 이루어내고 치러 낸 것이다.
그 고통이, 그 생채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우리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진정 하고 싶어 하였는지를 그 세대의 열망과 좌절을 우리 기성세대들은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조금 내려두고 세상을 지금까지 배워왔던 지혜와 슬기를 기본바탕으로 관찰하고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기성세대에게 이끌려 왔던 세상을 훌훌 털어 내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보고 그리고 자신만의 길에 도전하여 자아를 실현을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잠시 ‘백가쟁명’의 시절을 겪었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서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말하고 자기의 뜻을 실현해 보길 원했다. 그 시절, 모든 것이 좋았으며 모든 것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 시절은 끝나버렸다. 그 당시 우리는 너무나 좋아했던 것 기억 밖에는 없었으며, 그 시대가 준 선물을 때론 고민하고 때론 향유하며 함께 사용할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 시대에 독일의 피히테 같은 사람이 나왔어야 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시절, 바로 새로운 보수, 아닌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출현하였으며, 그들은 시대와 동떨어진 또 다른 획일을 강조하였으며, 국민들의 새로운 시대와는 다른, 4대강 사업과 초이노믹스와 창조경제 같은 무절제한 말을 퍼뜨렸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은 지난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세상이 변하였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본 필자는 여기에서 ‘사람’에게 주목하고자 한다. 사람은 늙고 젊고 아프고 가난하고 부자라는 수식이 지칭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그 중에서 본 필자는 젊은 사람 즉, 청년세대를 지칭하여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청년들에게 ‘사람이 먼저다’는 얘기는 ‘돈’보다, 그 무엇보다도 그 청년이 우선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주고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청년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고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는 청년에게 가치를 심어주겠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 예로 문재인 정부는 아르바이트 등 최저 시급을 2020년까지 10,00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2018년 시급은 2017년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공약한 최저 시급인 2020년까지 시급 10,000원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상률이다.(그리고 뒤를 이어 부산 중구가 생활시급으로 8,885원을 책정하였으며, 서울 광진구는 9,211원을 책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충남 아산시 역시 9,000원의 생활임금을 책정하였다고 한다. 생활시급이란 구나 구가 출자 출연한 기관에서 근로하는 근로자들에게 주는 임금을 말한다.) ‘라면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워서는 더 이상 안되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공약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힘든 자영업자와 영세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감히 약속드린다. 이제 청년들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세상으로 달려갈 준비는 나라와 정부 그리고 사회에서 맡게 될 것이라고!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 자기가 원하는 기업에 취업을 하고 자신의 일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권리를 위해 대한민국이 나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아래에서 청년들이 나설 때, 그 청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때, 대한민국이 제대로 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이제 세상은 변하였다, 왜 일제강점기와 4.19. 5.16, 5.18, IMF 사태 등 어려운 시기를 맞은 청년들을 얘기했겠는가? 청년이야 말로 가장 먼저 세상과 맞닿는 사람이니까 또한 청년들이 이 세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들이니까 청년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모두가 대한의 젊은 청년, 그들의 책임이자 그들의 몫인 것이다.
세상을 가질 준비가 되었는가? 대한의 청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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