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는 경북 영천이, 정도전은 영주가 고향이다. 정몽주의 나이가 많으니, 정도전의 고향 선배인 셈이다.
2005년 07월 25일(월) 04:20 [경북중부신문]
동향인 이들의 걸어간 길을 더듬어보면 인생무상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으면서도 이 둘은 모두 “짐은 곧 국가”인 왕권주의의 희생양들이다.
둘은 고려가 기울어갈 무렵인 공민왕때는 지금의 함경도 지방을 수시로 괴롭히던 여진족을 물리치는 동지의 길을 갔다. 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할 무렵에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정몽주는 ‘신하로서 두임금을 섬길수 없다“며 고려를 고집하다가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사주한 부하에게 목숨을 내준다. 선지교에서 죽었고, 죽은 후 대나무가 태생했다고해서 선죽교가 되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고, 일등공신으로서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고려사, 조선경국전을 물론 병서로서는 최초인 진법을 만들며 나라의 토대를 다듬었다. 경북궁, 창덕궁하는 명명도 정도전이 작품이었으니, 500년 조선 역사에 정도전의 근본이 배어들지 않은 곳이 없다. 억불숭유책도 그가 만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맹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신하가 올바로 잡을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맹자 추종자인 정도전은 왕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태종, 이방원에게 또 죽임을 당한다.태종은 강력한 왕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태종의 아들이 세종이고, 세종의 아들이 폭군인 연산군이라는 역사를 읽다보면, 가화만사성은 양민들에게나 통했던 모양이다.
이런 정도전은 결국 조선말기에 와서 역사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한 임금을 섬기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정몽주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고려를 무너뜨리고 민본적이고 유교적인 국가를 세우려 했던 정도전,
어떻게 보면 정도전은 조선최초의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정몽주는 짐은 곧 국가다는 왕에 대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였다.
개혁 논쟁이 여야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국가를 올바로 다듬어 정의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 국회가 자신들의 보신용인 개정 선거법을 만들어 놓았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목숨을 내놓지 않고 어떻게 진실을 추구할수 있겠는가. 정몽주에게서 애국심을 배우고, 정도전에게서 개혁정신을 배우라. 배우려면 보신용으로 전락한 개정선거법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먼저 자신의 가슴을 체크해라.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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