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앙코르 톰에 남아 있는 가장 웅장한 사원은 바이온 사원이다. 이 사원은 12세기 말 자야바라만 7세가 국가적 행사를 위해 지은 것으로 석탑 5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4면 탑의 얼굴 모양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의 모습을 부조하해 놓았고, 그 얼굴의 미소를 “앙코르의 미소” 또는 “인도차이나의 미소”라 한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여기에도 크메르루즈의 집권과 함께 귀중한 문화재가 상당 부분 망실된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피라미드 식으로 건조한 바푸온 사원, 달(月)의 정령 소마 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전하는 페르나카스 사원, 지금도 들어가면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저주의 신앙 때문에 근접하지 않고 있는 미완성의 따깨오 사원, 그러나 그 무엇보다 화려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것은 타프롬 사원이다.
이 사원은 자야바라 황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은 사원으로 방마다 루비로 치장하였던 바, 달 밝은 밤이면 그 루비들이 발하는 빛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한다.
지금도 벽면에 남아 있는 루비를 박았던 자리가 그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 루비를 박았던 구멍의 크기로 봐서, 그리고 그 빛이 달빛에 반사되어 하늘로 치솟을 정도였다면, 거기 박혔던 루비 하나하나는 분명 세계적 보물에 틀림없을 법한데 그것들은 지금 다 어디쯤에 가 있는 것일까.
오후에는 앙코르와트로 갔다. 앙코르는 ‘도시’, 와트는 ‘사원’이란 뜻의 크메르어이다.
아! 앙코르와트, 이끼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우리를 맞는 고색창연한, 그러면서도 의연한 자태가 나그네를 압도하고 있다. 年前에 유럽을 둘러볼 때 아테네의 파르테논도, 로마의 콜로세움도 그 규모와 양식이 기막힌 흥분과 감탄을 가져왔었지만, 이 앙코르는 그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그 규모 면에서부터 그들에게 조금도 손색이 없다. 동서로 1,500m, 남북으로 1,300m, 높이 65m의 중앙 탑을 중심으로 늘어선 완전한 돌, 돌을 쪼아 정교하게 잇고 이어 건조한 사원! 760m에 이르는 기나긴 회랑의 벽에 도화지에 연필로 선을 긋듯 세밀하게 부조해 낸 그림들, 그 그림이 하나 같이 그 시대의 생활 이야기, 역사 이야기, 종교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인물 하나도 세세한 표정에 이르기까지 예사롭게 그린 것이 전혀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귀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옷을 벗은 사람과 입은 사람, 얼핏보면 같은 병사로 보여도 노예 병사가 서는 위치와 총알받이로 사용한 그들의 술에 취하여 해롱거리며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모습, 교실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앞자리에 앉아 교사에게 칭찬 받는 학생의 모습과 뒷자리에 앉아 잠자는 학생, 늦게 들어와 벌쓰는 학생, 산부인과 병원, 도박하는 모습, 전쟁이 끝나고 태평성대를 맞아 연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심지어는 홍등가의 야릇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전모를 상세하게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들이다.
길고 긴 2회랑을 따라 부조를 보며 설명을 들으며 돌로 조성한 우물을 바라보며, 3회랑을 올라가면 그 내부에 화려한 십자형 수랑과 현기증을 일으키도록 까마득한 하늘을 받쳐 세운 돌탑, 그 서쪽 방에 햇빛이 들어오면 황제는 人身을 넘어 神이 된다던가. 앙코르와트는 우리가 쉽게 알고 왔듯이 불교 사원이 아니다. 불교 냄새가 젖어 있긴 하지만 이것은 고스란히 힌두교의 우주관을 담아내고 있는 사원이다.
어쨌거나 후대 인은 이렇게 와서 얼핏 보고 잠시 차탄(嗟歎)하고 가지마는,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 工學도 과학도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토록 거대하고도 찬란한 역사(役事)를 이루자면 얼마나 큰 권력의 카리스마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인가. 기록을 보면 앙코르 왕국이 전성기에는 인구 100만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는 말이 그저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흥망은 유수하여 찬란한 문화와 권력과 부를 자랑하던 앙코르왕국도 자야바라만 7세의 과도한 토목공사와 집권층의 부패로 태국의 아유타야족에게 마침내 멸망의 비운을 맞게 된다. 이후로 앙코르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정글 속에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가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탐험, 보고되고 이후로 90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급격히 세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덕분에 캄보디아는 90년이라는 긴 세월을 프랑스의 지배 아래서 삶을 꾸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 발견되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가? 그것은 아니다. 이 캄보디아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여기 신의 나라에 들어가면 천벌을 받아 죽게 되는 것으로 여겨 그냥 앙코르와 함께 살아왔을 따름이다.
3. 톤레샵, 황토빛 생명의 슬픔
7.27. 날씨 갬. 앙코르의 벅찬 감격을 안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한다. 낯설은 동남 아시아의 밤하늘에 별빛이 아름답다. 끝없이 펼쳐진 열대림의 싱그러운 호흡도 호흡이려니와 단조로운 일상을 떠나 생경한 문화를 호흡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
오늘은 톤레샵 호수를 찾는 날이다. 길이 330km, 폭 120km로서 미국의 5대호와 바이칼호에 이어서 세계 3위의 호수이다. 대형 호수라 하여 우리는 흔히 눈부신 에메랄드 빛 물결을 연상하지만, 톤레샵의 물빛은 우리나라에서는 홍수 때나 구경할 수 있는 진한 황토빛으로 넘실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그 물빛보다 더 진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썩고 있는 물 냄새, 벽은 없고 썩어 가는 지붕만 얹힌, 집이라 할 수도 없는 집들. 아예 조그마한 나룻배에 하늘만 가리고 앉은 집들. 이름하여 보트 피플. 우리가 탄 버스가 도착하자 벌떼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눈이 퀭한 아이들. 배를 타고 호수로 들어갔을 때 그 호수 안에까지 ‘물통’ 하나를 타고 달려오는 아이들. 생명이란 무엇인지, 얼마나 모진 것인지, 나는 여기 와서 무얼 하고 가는가. 무얼 하고 가야 하는가. 돌아가서 내가 할 일은 없을 것인가. 야윈 손을 내미는 저들에게 내가 해준 일은 무엇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알량한 동정의 눈물 같은 건 애초부터 보이지 않기로 하자.
이러한 광경은 캄보디아에 가면 어디를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식수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바라이 호숫가, 또는 우리나라 1960년대의 시장 풍경과 비슷한 그들의 재래시장 등 어디를 가나 손을 내밀면서 서투른 한국어로 ‘사모님 이뻐요’ ‘사장님 멋있어요’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 앞에서, 나의 뇌리에는 문득 초등학교 시절 미국 선교사가 나누어주던 구호 물품 중 중고 잠바 하나가 투영되고 있었다.
한 삼 년쯤, 나는 그 잠바 하나로 겨울을 났었다. 그러던 내가 시절을 잘 타고나서 이제 물질의 곤핍(困乏)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들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저들을 향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관리자 기자 seok@ikwb.co.kr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북중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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