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도심 곳곳에는 전국 농촌지역에서 상경한 농민 7만명이 밤늦게까지 생존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결사반대" " 개방농업정책 철폐" "우리쌀 사수"라고 쓰인 피킷과 플랙카
2003년 11월 24일(월) 05:31 [경북중부신문]
왜, 농민들은 가을 걷이가 끝난 들녘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 기울여보지도 못하고 지리조차 생소한 서울로, 서울로 발길을 재촉해야만 했을까.
" 죽느냐, 사느냐는 갈림길에서 한순간 이나마 마음편할 날이 있겠습니까." 추곡수매장을 뒤로한 구미시 선산읍 60줄 농민의 한숨이 그 해답일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해에 비해 하락한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은 생존의 수면아래로 가라앉는 농민의 생존권을 더욱 깊은 수심속으로 끌어 들였다.
지금, 농촌의 현실은 말그대로 절망적이다. 고아읍 신촌리 농민 김모씨의 경우가 절박한 농촌의 현실태를 드러내 보여준다. 김씨는 현재 8천평의 벼농사와 한우 10마리를 키우며 근근히 삶을 연명해 오고 있다. 옛날 같으면 부농측에 들었을 김씨는 그러나 현재 빚더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24년 동안 미련한 곰처럼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김씨에게 주어진건 부채 1억5천만원. 여기에다 1억3천만원의 보증까지 감안한다면 김씨는 3억원에 이르는 빚더미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애처로운 것은 김씨가 1년 동안 피땀흘려 벌어들인 수익은 3천만원 정도, 그러나 말이 수익이지, 농자재값, 인건비, 비료, 농약대, 사료값을 빼고나면 오히려 적자 인생이다. 여기에다 김씨에게는 중1, 고2의 자녀가 있다. 학자금, 대출이자에다 보증이자에 가계부를 쏟아붓고나면 생활비는 생각도 못한다,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다.
김씨의 주변 농가도 실상은 마찬가지다. 올들어서만도 10명정도가 눌려오는 빚을 이기지 못해 파산신청을 해야했고,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농민들도 대부분 평균 빚이 1억원가량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2002년 7월 영농자금의 이율을 5%에서 4%로 인하하고, 2003년 5월에는 영농자금이율을 연15%에서 12%로 인하하는데 그쳤다. 생색이라도 내듯 올들어서는 2년거치 3년 상환조건의 영농자금을 3년거치 7천 상환으로 연기하는데 그쳤다. 암환자에게 머큐롬을 주고 빨리 병에서 낳으라는 식의 임기응변 처방이나 다름 아닌 것이다.
중앙정국이 정쟁으로 치달으면서 개인 이기주의에 몰두해 있는 동안 선산읍 이모씨도 요즈음에는 살맛이 없다. 올해에는 그나마 사과값이 예년에 비해 올라 이씨는 5천평의 과수원에서 5천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말이 수익이다. 농약비 6백만원, 비료 등 자재값 3백만원, 인건비 2백만원과 기타 경비 2백만원을 제외하고 나면 이씨의 손에는 3천7백만원이 잡힐 뿐이다. 그러나 이씨는 농가대출금 이자로 7백만원, 원리금 상환에 1천5백만원을 내야했다. 1천5백만원으로 2명의 중학생과 생계비를 꾸려가야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다른 농민에 비해 나은 이씨의 경우가 이런 정도다.
그러나 농정은 헛돌고, 생존권을 보호해달라고 중앙으로 보내놓은 국회의원들은 날마다 치고박는 싸움 일색이다.
"총선이 다가왔기 때문에 다시 사탕발림을 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속지 않습니다. 농민을 도울 돈이 없다구요, 수조, 수십억원 부도를 낸 재벌 회사들은 잘도 도와 줍디다. 한 개의 재벌회사 회생에 들인 돈만 농촌에 쏟아부우면 농촌은 기사회생 합니다."
절박한 농촌의 현실, 농민들은 국가에 대해 지금 당장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임시 대책과 장기적인 생존권을 위한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장,단기적인 대책 수립이 뒤따르지 않는 한 생의 벼랑에선 농민들은 다시 도심속으로 몰려가 생존권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이다. 농촌의 지금 시계는 제로상태, 이들에게 다가오는 건 절망 뿐이다.
〈박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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